최근 국내 증시는 젠슨 황의 말 한마디, 혹은 테마주들의 뉴스 하나에 조 단위의 자금이 왔다 갔다 하며 엄청난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장 시작과 동시에 8,900을 찍는가 싶더니 갑자기 8,500을 터치했다가 8,800으로 코스피가 마감했는데요... 널뛰기 장세에 피로감을 느끼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시선을 돌려 "진짜 숫자가 찍히는 곳"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은 미국 주식 쪽으로 눈을 돌려봤습니다.

현지 시간 6월 1일 어제, 미국 증시에서 엄청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바로 전통의 서버 강자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가 시장 예상치를 완전히 박살 내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주가가 29% 넘게 폭등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지난주 스노우플레이크(SNOW) 역시 37%나 급등했습니다.
이런 어닝 서프라이즈가 시사하는 점은 꽤 명확해 보입니다. AI 투자의 중심이 엔비디아(반도체 단품)를 넘어, 진짜 인프라를 구축하고 소프트웨어를 올리는 '다음 단계'로 순환매가 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HPE의 실적을 빠르게 분석해 보고, 우리가 길목을 지켜야 할 다음 타자(브로드컴, 오라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HPE의 미친 실적, 무엇이 시장을 놀라게 했나?
HPE의 이번 회계연도 2분기 실적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 매출: 107억 달러 (시장 전망치 98.8억 달러 상회, 전년 대비 40% 증가)
- 주당순이익(EPS): non-GAAP 기준 $0.79 (시장 전망치 $0.54를 무려 46% 상회)
시장 유동성이 빅테크의 AI 버블을 의심할 때, HPE는 숫자로 증명했습니다. 가장 소름 돋는 포인트는 세부 지표에 있습니다.
- 데이터센터 네트워킹 매출: 전년 대비 233.3% 폭등 ($3억 2천만 달러)
- 서버 매출: 전년 대비 32.7% 증가 ($55억 달러)
- AI 시스템 대기 주문(Backlog): 59억 달러 적체
💡 핵심 인사이트 "빅테크들이 엔비디아 칩만 사두고 끝낸 게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서버(Server)를 사고 네트워크(Networking) 장비를 깔아서 인프라를 완성하고 있다!"
물론, 지금 너도나도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서버를 발주하는 모습을 보면 '이거 단기 거품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에 델이 갑자기 오른것도 그렇구요. 언젠가 빅테크들의 인프라 투자가 한계에 다다르면 하드웨어 서버 기업들은 부침을 겪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진짜 승자가 될지 모르는' 춘추전국시대 장세에서, 누가 진짜일지. 누가 살아남을지 알기위해 더더욱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야 합니다. 거품이 꺼지더라도 살아남아 인프라를 독점할 진짜 체급을 가려내는 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2. 그렇다면 AI 인프라의 다음 타자는 누구인가?
HPE가 쏘아 올린 공 덕분에 시장은 이제 "다음 실적 발표에서 기가 막힌 숫자를 보여줄 기업이 누구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력한 후보가 바로 브로드컴(AVGO)과 오라클(ORCL)입니다.
타자 1. 브로드컴 (AVGO) - 데이터센터의 '우체국장'과 '맞춤 양복점'
실적 발표 예정: 6월 3일 장마감 후 실적발표
한 줄 요약 엔비디아가 세계 최고의 '엔진(GPU)'을 만든다면, 브로드컴은 그 엔진들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깔고, 빅테크 전용 '맞춤형 엔진'까지 제작해 주는 기업입니다.
많은 분이 브로드컴을 통신 칩 만드는 회사 정도로만 알고 계시지만, AI 시대에 이 회사는 대체 불가능한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① 데이터센터의 '우체국장' (초고속 네트워킹 스위치 칩)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수만 개를 한곳에 모아둔다고 해서 바로 AI가 작동하는 게 아닙니다. 이 칩들이 서로 엄청난 속도로 대화를 나누며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데요. 이 통신을 제어하는 고성능 네트워킹 칩(Tomahawk 등) 시장을 브로드컴이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HPE의 네트워킹 매출이 233% 폭등했다는 건, 그 안에 들어가는 브로드컴의 칩도 불티나게 팔렸다는 뜻입니다.
- ② AI 칩의 '맞춤 양복점' (커스텀 ASIC 반도체)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은 엔비디아 칩이 너무 비싸니까 "우리 서비스에만 딱 맞춘 우리만의 AI 칩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만들 기술은 없죠. 이때 설계도를 들고 브로드컴을 찾아갑니다. 브로드컴은 빅테크들의 입맛에 맞게 칩을 맞춤 제작(ASIC)해 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구글의 AI 칩인 TPU도 브로드컴의 손을 거쳐 탄생합니다.
- 투자 포인트: 이미 시장에서는 브로드컴의 이번 분기 AI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40% 이상 성장한 107억 달러 수준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HPE의 네트워크 장비 호황은 브로드컴의 실적 역시 '역대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강력한 힌트입니다.
타자 2. 오라클 (ORCL) : 데이터의 ' 절대 군주'이자 'AI 가성비 땅틀러'
실적 발표 예정: 6월 10일 장 마감 후 (RPO 및 클라우드 성장률 주시)
한 줄 요약 전통적인 데이터 저장소 대장이었던 오라클이, 이제는 챗GPT마저 서버를 빌려 쓰러 오는 '가장 핫한 AI 클라우드 공급처'로 체질 개선에 완벽히 성공했습니다.
오라클은 원래 전 세계 대기업의 윈도우나 리눅스 서버에 들어가는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로 수십 년간 돈을 쓸어 담던 고인물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최근 AI 클라우드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 ① "우리 없으면 데이터 정리 안 돼" (독점적 DB 지위) 생성형 AI를 학습시키려면 기업들이 가진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 대기업 데이터의 대부분이 이미 오라클의 시스템 안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결국 AI를 제대로 쓰려면 오라클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② 빅테크들이 줄 서는 가성비 클라우드 (OCI)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 구글이 3대장입니다. 후발주자인 오라클은 애초에 'AI 전용 고성능·가성비 인프라(OCI)'라는 틈새시장을 팠습니다. 이게 대박이 나서 지금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챗GPT 개발사)까지 자기네 서버가 부족하니까 오라클 클라우드 서버를 빌려 쓰고 있습니다.
- 투자 포인트: 오라클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들과 잇따라 클라우드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HPE 서버가 불티나게 팔렸다는 뜻은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의 예약 매출을 뜻하는 '나머지 이행 의무(RPO)'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지난 분기에도 깜짝 실적으로 9% 넘게 올랐던 오라클이기에 이번 6월 10일 실적이 더욱 기대되는 시점입니다.
3. 결론 : 껄무새가 된 필자의 솔직한 심경 고백...
국내 코스피 시장의 얄궂은 테마주 장세에 지치셨다면, 미국 AI 인프라 밸류체인의 단단한 흐름을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AI 산업은 꺼져가는 거품이 아니라, 반도체 ➡️ 서버/네트워크(HPE) ➡️ 커스텀칩/통신(브로드컴) ➡️ 클라우드/소프트웨어(오라클)로 자금이 아주 건강하게 순환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HPE의 폭등을 보며 뒤늦게 추격 매수하기보다는,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실적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브로드컴과 오라클의 길목을 지켜보는 전략이 훨씬 현명한 시점입니다.
HPE : 서버와 도로망(하드웨어 인프라)을 깔아주는 단계 → 브로드컴 : 그 서버들을 엄청난 속도로 연결하고 칩을 맞춤 제작하는 단계 → 오라클 & 스노우플레이크 : 깔아놓은 서버 위에 기업들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올려 AI를 구동하는 단계
사실... 이 글을 쓰는 저에게는 아주 가슴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제가 오라클(ORCL)을 들고 오랜 기간 인고의 시간을 버텼었는데요. 하필 지난주 금요일에 간신히 본전이 오길래, 마이크로소프트(MSFT) 물려있던 계좌에 물을 좀 타고 싶어서 딱 1주(정찰병)만 남겨두고 전량 처분을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분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무려 15%가 더 폭등해 버렸습니다... 😭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야 하나?" 하는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주식 시장에서 이미 떠난 버스를 무리하게 쫓아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기에 꾹 참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또 다른 AI 인프라의 핵심 축인 브로드컴(AVGO)의 주주 자리는 여전히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라클에서 놓친 아쉬움을 이번 브로드컴 실적 발표가 시원하게 달래주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HPE가 쏘아 올린 AI 인프라의 확장이 브로드컴과 오라클의 실적으로 이어질지, 여러분은 어떤 종목의 길목을 지키고 계시나요? 댓글로 솔직한 의견을 공유해 주세요!
(본 글은 개인의 투자 기록이자 경험담일 뿐,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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